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니 노여워말라

김종열 기자 | 기사입력 2020/06/23 [05:04]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니 노여워말라

김종열 기자 | 입력 : 2020/06/23 [05:04]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알렉산드르 푸쉬킨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랑으로 인해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

 

슬퍼하는 당신의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말없이, 그리고 희망도 없이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때론 두려워서, 때론 질투심에 괴로워하며

오로지 당신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도 나처럼

당신을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 알렉산드르 푸쉬킨(Alexandre Pushkin)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니 노여워말라고 세상에 읊었지만 정작 그는 미모의 부인을 둘러싼 삼각 관계로 결투 끝에 38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알렉산드르 푸쉬킨(Alexandre Pushkin)183132살의 늦은 나이에 미모가 뛰어난 나탈리아 곤차로바(Nataliya Goncharova)와 결혼하였다. 나탈리아는 그가 현기증을 느꼈다고 표현했을 만큼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와의 결혼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미모 덕에 사교계에서는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남편인 푸쉬킨의 문학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나탈리아는 그보다 13년 연하의 여성으로 첫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었는데 1831년 푸시킨이 나탈리아에게 열렬히 구애를 하여 결혼했다. 푸쉬킨은 결혼을 할 때도 궁핍한 장모에게 빚을 내어 거액의 혼수금을 줘야했고, 결혼 후에는 사교계에서 각광받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늘 돈에 쪼들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을 마련했지만 늦은 결혼인데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푸쉬킨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푸쉬킨은 관직에 등용되어 표트르 대제 치세의 역사서술직에 위촉받았다. 그후 1834년 황제의 시종보로 임명되었는데, 여기에는 그의 문학적 실력보다는 나탈리아의 미모에 흑심이 있던 황제가 부부동반으로 궁정행사에 참석을 바라는 연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곤작으로 근무하던 기간중에 나탈리아와 황제 표트르 간에 불륜관계가 있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으나 푸쉬킨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부터인가 나탈리아가 젊은 프랑스 장교 단테스와 밀회를 즐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단테스는 푸쉬킨 처제의 남편으로 그와는 동서지간이다. 게다가 그는 간통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야유조의 익명 편지까지 받게된다. 푸쉬킨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얼마후 결국 권총 결투가 벌어졌다. 군인과 시인의 결투에서 푸쉬킨은 치명상을 입고 이틀후 38년의 짦은 생애를 마쳤다.

 

푸쉬킨은 사망 수년전 그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결투로 사망한것과 비슷한 줄거리를 소재로 구상했던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오네긴의 친구 렌스키는 어느날 오네긴이 자기의 애인인 올가에게 접근하며 둘이서 웃고 즐기는 장면을 목격하고 오네긴은 그 순간 화를 참지 못하여 결투를 신청한다. 그 결투에서 렌스키는 오네긴의 총을 맞아 죽고 만다. 푸쉬킨의 삶도 자신이 쓴 소설처럼 그렇게 막을 내렸다.

 

누군가 말했다. “푸쉬킨이 그의 시처럼 삶이 그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뜨지는 않았을텐데라고...

 

▲ 나탈리아 곤차로바(Nataliya Goncharova)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들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반드시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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